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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프랑크푸르트의 시작

by 땡굴비 2024. 3. 29.

처음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로 이뤄져 있었으나, 일부 학자들이 전통적 마르크스 이론으로는 20세기에 자본주의가 예상 밖으로 급격하게 발전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자들은 실증주의, 유물론, 결정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면에서 이들의 이론에서 비판 이론적 특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학파의 중심인물은 허버트 마르쿠제,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등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라는 용어는 단지 프랑크푸르트 사회 연구소에서 일했거나 관련이 있었던 사상가를 가리킨 데서부터 출발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지칭되는 사상적 전통은 1930년대 이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사회 심리학자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각별히 연관되어 있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허버트 마르쿠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이루어졌음에 비해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근본적으로 인식론적 방법, 미학, 철학 등 분야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전개되었다.

이들의 관심은 이데올로기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시에서 불균형적 힘의 관계를 왜곡, 은폐, 정당화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비판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왜곡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론을 비판이론이라 규정하게 된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서 추구한 것은 객관과 주관의 매개물로서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도르노는 독일의 사회학자, 철학자,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비판이론의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하는 학자로는 이 외에도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이 있다.

아도르노가 바라보는 문화란 이성에 바탕을 둔 인간의 고유한 활동으로 본다. 아도르노는 문화가 자본주의적 사회화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 매개적 기능이 문화산업으로 대행되었다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에 의하면 이 문화산업이란 야만적 무의미, 동조, 권태, 현실로부터 도피의 조달자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도르노는 소비가 조장되는 문화산업으로 인한 상품들이 대중에 대한 정치, 사회적 통제를 강화한다고 말한다.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을 설명하는 데 있어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문화산업은 광고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중들의 관심, 흥미를 끌고 계속 사로잡아야 하고 둘째, 문화산업의 산물들이 대중들의 의식에 맞게 설정되어 생산물들을 선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프랑크푸르트학파가 계몽시대 실패로 간주했던 사회 심리적 현상을 탐구한다. 국가 사회주의, 스탈린주의, 국가 자본주의 및 문화 산업을 전통적인 이론의 용어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지배로 보았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과정에서 현대 철학이 지나치게 합리화되고 기술 지배의 도구가 되었다고 믿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노동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포함된 철학적 인류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다.

프롬의 사상의 특징은,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 분석 이론을 사회 정세 전반에 적용한 것에 있다. 인간과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에 주목했고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개인과 사회 간의 갈등에 중점을 둔 논문들을 발표했다. 인간의 악덕은 제반 사회 조건을 개혁함으로써 감소시킬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인본주의적, 공동체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주장했다.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롬은 자아를 실현하는 생활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이분법적 사고 역시 비판했다. 프롬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양 극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의식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이라고 한다.

비트 포겔은 심도 있는 중국 연구로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비트 포겔은 동양적 권력 형태는 빠르게 확산되어 몽골과 몽골이 지배한 러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체제의 특징은 사회 보다 국가가 더 강한 힘을 갖는다는 것인데, 그 기반은 민중의 주체성을 잃게 만드는 공포정치이다. 이 관료 계급이 주 지배계층이고, 소유관계에 의해 계급관계가 결정된다고 주장하던 마르크스의 주장과 다르게 권력관계가 계급관계를 결정한다.

하버마스의 작품은 칸트와 계몽주의의 전통 안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 담론 윤리를 통해 이성에 대한 인간의 잠재력의 실현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고 보다 인간적이고 공정하며 평등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한 강조한다. 하버마스는 계몽주의가 미완성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것이 폐기되지 않고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는 단순히 가난과 빈곤만 사라진 상황을 인간의 진정한 해방으로 보지 않았다. 억압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가 가능해야만 비로소 해방된 사회다. 그는 이런 해방된 사회는 이성을 통한 논쟁과 가르침, 곧 계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정치적 공론장에 내재하는 사회적 자기 조직화의 잠재력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