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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양철학의 시작과 흐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by 땡굴비 2024. 3. 27.

서양 철학자들을 여러 주요한 학파로 나뉘는 데 전형적인 질문을 두고 나누곤 했다. 고대 세계에서 매우 영향력이 있었던 주제 구분은, 스토아학파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철학은 논리학, 윤리학, 물리학으로 구분하였다. 오늘의 철학에서는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으로 나눈다. 논리학은 철학의 주요한 과로 분류되지만, 철학자들이 철학과 별도의 과학으로 분리될 때도 있다. 이러한 분과에서 현재의 철학은 여러 개의 하위 분야가 있다. 분석 철학과 대륙 철학이다. 

 

철학은 다른 분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도 같이 다룬다. 순수 수학과 자연 과학에 해당하는 것도 철학에 포함된다. 추후 대학에서 학문의 분화와 과학 기술의 빠른 발전이 이러한 과학들이 철학과는 별도의 학문으로 분리되는데 기여했다. 수학은 고대에 전문적인 과학이 되었고 자연 철학은 자연 과학의 여러 분과로 발전, 과학 혁명으로 가는 길을 마련했다. 

 

서양철학의 용어는 19~20세기 걸쳐 형성되었다. 많은 세계 지도가 부정확하면서 다른 지역의 특정한 지리적, 정치적 차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양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리스, 로마와 유대, 기독교 문화, 르네상스, 계몽주의, 식민주의로 정의된다. 

 

스토아는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형성·계승되어 고정된 사상 체계는 아니다. 스토아학파는 학문을 자연학, 논리학, 윤리학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 세 학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을 매개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시기별로는 후기로 넘어가면서 점차 자연학보다는 윤리학 쪽에 학자들 관심이 더 쏠리게 되었다. 스토아학파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실제로 보여주려고 했다. 전반적으로 이들은 외적 권위나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금욕과 극기의 태도를 얻으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첫 시작은 확실한 사상을 알기는 어렵다.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 사상을 볼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 이전에 활동하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에 맞서 기술에 대해서 잘 알며 덕을 발휘하려면 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방법은 논변을 진행하는 중에 잘못된 판단의 모순을 깨우치고 다시금 바른 판단으로 유도했는데 이는 산파술이다. 인간에게 내재한다고 믿고 사람들에게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온갖 계층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고 용기나 정의 등에 관한 윤리상의 개념을 설교하고 다녔다. 그는 대화를 통해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고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엘레아학파는 감각적 경험의 인식론적 유효함을 거부하고, 대신 진리의 기준을 위한 논리적인 명료성의 기준과 필요성을 취하였다. 감각은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이 통일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모든 것은 하나"라는 본질적 진리에서 우리는 오직 생각에 따라서만 감각의 잘못된 표상을 뛰어넘어 존재에 대한 지식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창시자는 신과 같이 추앙을 받던 에피쿠로스이다. 에피쿠로스의 저작 중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에피쿠로스 제자 중 다수는 쾌락주의를 계승했다. 또한 원자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원자론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물질에 대해서는 들어맞는다. 과학 분야에서 원자론을 최초로 제기한 사람은 돌턴이다. 이는 후에 원자론의 사상이 된다. 돌턴은 각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의 질량비를 찾기 위해 원자론을 기반으로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이러한 결합 규칙을 설정해 놓음으로써 돌턴은 여러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질량비를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수소를 기준으로 한 원소들의 상대적 질량비, 즉 원자량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오니아학파는 지각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연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 불렀다. 또한 우주론자라고도 불렸다. 대부분의 우주론자는, 물질은 어느 것으로부터 어느 것으로 바뀔 수 있지만, 만물에 공통의 불변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험으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종교나 신화의 추리로 이용했다. 

 

특히 서양철학의 중심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명하다.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학설을 제창하였다. 현실에 있어서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고민했다. 수학뿐만 아니라 선, 미, 용기의 이데아도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한 충동적이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와 결합하지 않으며 순수한 이성으로 되어 있다고 하고,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성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이성의 부분은 통치자라고 하고, 이성은 당연히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여야 하므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하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전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존재 내지 실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일을 중심 과제로 하였다. 플라톤의 제자로 이데아론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주의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실주의자로 지적되고 있으며, 예술에 관해서도 플라톤과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예술을 일종의 '모방'으로 보는 점은 플라톤과 같으나, 플라톤이 '모방의 모방'으로 생각하여 이데아의 참된 인식을 흐려 놓는 것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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